시의 갈래는 내용에 따라, 형태에 따라 각각 세 가지로 나뉨.
'갈래'란 문학 작품을 유형에 따라 구분한 것을 말해. 시의 갈래는 내용에 따라, 그리고 형태에 따라 나눌 수 있어.
먼저 내용에 따라서는 서사시, 서정시, 극시로 나뉘어. 시인의 주관적인 정서가 잘 느껴지는 시가 서정시이고, 신과 영웅, 역사적인 사건 등을 소재로 하여 마치 웅장한 이야기처럼 길게 쓴 시가 서사시, 연극 대본처럼 대화 등으로 표현하는 시가 극시야.
형태에 따라서는 산문시, 자유시, 정형시로 나뉘지. 정형시는 시조처럼 글자수 등 형식이 정해진 시를 말하고, 자유시는 형식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쓴 시야.
산문시는 자유시보다 더 파격적인데, 연과 행의 구분도 없이 줄글로 쓴 시야. 정말 산문 같단다.
시의 갈래를 알면 기본적인 특성도 알 수 있어. 따라서 각 시가 어떤 갈래에 속하는지 알아야 해.
서정시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이나 느낌, 감정 등을 담은 시.
'서정시'가 어떤 시인지 알려면 '서정(抒情)'이라는 말의 뜻을 알면 돼. '서정'이란 '감정을 펼치다'라는 뜻이야.
그러니까 서정시는 시인의 감성과 정서를 드러낸 시를 말해.
그래서 읽는 이도 시인이 느꼈던 감동과 체험을 상상하며 읽으면 잘 이해할 수 있어. 대부분의 현대시는 서정시란다. 앞에서 예를 든 〈엄마야 누나야〉나 〈절정〉 모두 서정시이지.
다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정시라고 알려진 〈황조가〉란다. 고구려의 제2대 왕인 유리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어. 주몽의 아들 말이야. 어떤 체험과 감정이 담겨 있는지 읽어 보자.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운 이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왕, 〈황조가〉
유리왕이 아내와 헤어지고 난 뒤 꾀꼬리를 보면서 이별을 슬퍼하고 있는 내용이야.
꾀꼬리는 짝이 있는데 자신은 짝을 잃고 혼자 돌아가야 하니 얼마나 허탈하고 슬플까. 꾀꼬리를 부러워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어. 시인의 감정이 잘 느껴지는 좋은 서정시야.
서사시
영웅적인 인물들이나 신들의 이야기, 역사적 사건 등을 웅장하게 엮어낸 시.
'서사(敍事)'란,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적은 것을 말해. 서사시는 영웅의 일대기나 위대한 업적, 역사적인 사건 등을 소재로 쓴 시야.
물론 신화적인 이야기도 서사시로 만들어지지. 서사시는 대체로 아주 길고 웅장해. 그래서 꼭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아.
서양의 대표적인 서사시로는 고대 그리스의 시인 호머가 지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가 있어.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그리스 영웅들과 신들의 활약을 담은 시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사시로는 고려시대 때 이규보가 지은 〈동명왕기〉가 있어.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곧 동명왕의 일대기와 건국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서사시야.
현대에 지어진 서사시로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과 신동엽의 〈금강〉 등이 있어.
전체 72장 930여 행으로 되어 있는 〈국경의 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두만강 근처 국경 지대에 살던 '순이'라는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말하고 있단다.
〈금강〉은 무려 4800여 행으로 되어 있는데, 동학농민운동부터 3·1운동, 4·19혁명을 하나로 연결하여 민중의 저항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지.
극시
연극 대본과 같이 극의 형식을 가진 시.
'극시'에서 '극(劇)'이란 등장인물들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진 예술 작품을 말해. 극시는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대사로만 되어 있는 시야.
고대에는 연극을 할 때 그 대사가 전부 시로 쓰였단다. 그런데 산문 형식이 등장하면서 극시가 희곡으로 변하게 되었어.
정형시
시의 구조나 시구, 또는 리듬에 있어서 정해진 형식의 제약을 받는 시.
'일정한 형식이나 틀'을 '정형(定型)'이라고 해. 정형시는 바로 이 형식과 틀이 정해져 있는 시야.
글자수에 규칙을 주는 경우, 같은 소리가 나는
시조란?
우리 민족이 만든 독특한 정형시의 하나. 원래 노래의 가사로서 문학인 동시에 음악인 셈이다.
2. 시조의 기본 형식
평시조를 기준으로 할 때, 3・4조의 음수율을 가지고 3장6구, 45자 안팎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4음보격이다. 자수는 시조마다 1, 2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종장 첫째 구만은 3음절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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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시조의 갈래
1) 형태상 갈래
① 평시조 ; 기본 형식의 단형 시조(短型時調).
② 사설시조 ; 2장 이상이 평시조에 비해 긴 장형 시조(長型時調). 특히 중장이 거의 무제한으로 길어진다.
③ 연시조 ; 2수 이상의 평시조가 한 편을 이룬 시조.
2) 시대상 갈래
① 고시조 ; 시조가 발생한 때로부터 갑오경장(1894년) 이전까지 지어진 시조.
② 현대 시조 ; 갑오경장 이후부터 지어진 시조.
4. 등장 배경
고려 후기에 이르러 신흥사대부들이 역사적 전환기를 맞아 경기체가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유교적 관념과 주관적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창안된 양식(경기체가는 객관적 사실을 그리기에만 적합하였을 뿐 내면적 정서를 표현하기에는 부적절하였다).
5. 영향
(1) 한시의 영향 ; 한시를 번역하면서 발견된 시형.
(2) 10구체 향가 3단 구조의 영향 ; 향가의 행과 구의 정형성, 낙구의 감탄사.
(3) 고려가요 분장형태의 영향 ; 「만전춘별사」의 여음구를 제외하면 시조 형식과 동일.
(4) 민요 두 줄 형식의 영향 ; 6구 3절식 민요에서 파생된 것.
6. 시조의 역사
(1) 시조의 발생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고려 중기에 형성되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조는 발생 초기부터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함께 나타났으나 평시조는 조선 전시기를 통하여,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에 활발히 지어졌다. 개화기 이후 나타난 자유시에 밀려 점차 쇠퇴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남선 등에 의해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2) 1920년대에 들어 계급주의 문학에 대항한 국민문학파의 활동과 함께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이은상, 이병기 등에 의해 본격적인 현대 시조가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후 김상옥, 이호우, 정훈 등의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시조(時調)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이세춘이 당시에 ‘단가’라고 불리던 것을 ‘시절가조(時節歌調)’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7. 문학사적 의의
(1)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
(2) 한문 문화가 모든 문화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시기에 우리말로 노래하여 민족의 주체성을 살렸다.
(3) 고려시대에 형성되어 현대시조로 전승된 전통적 문학.
(4) 양반과 평민 모두가 지었던 국민문학.
8. 시조 종장의 특징 및 의미
(1) 특징 : 시조의 초장, 중장은 3,4,3,4,의 개방된 모습을 띠어 생각의 지속을 보이나, 종장에서는 3,5,4,3,으로 하여 정서를 전환, 고양하면서 주제를 집약적으로 제시한다. 즉, 시조의 초장과 중장은 뒤에 무엇인가가 이어질 것을 예상케 하는 율격적 개방성을 띠고, 종장은 호흡을 비대칭적으로 긴장시켰다가 풀어줌으로써 작품을 완결한다.
(2) 종장 : 시조 종장의 첫구는 3자, 5자로 되어 있는데 5자를 배열함으로서 시적 긴장감을 유발한 다음, 둘째 구의 4자에 주제를 제시, 마지막 3자는 실질적 의미가 없는 부분으로 창으로 부를 때 제외되기도 한다.
9. 당대의 세계관과 장르의 연관성
시 형식의 변화 양상은 각 민족이 자신이 지닌 전통을 바탕으로 각각의 시대상황과 당대 인간들의 삶과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절한 시 형식을 모색한 결과이다. 즉, 불교적 세계관에 놓여 있던 신라인들이 그들의 정서를 표출하기에 적절한 양식으로 향가를 창조했듯이,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들의 성리학적 세계관을 표출하기에 알맞은 시조라는 양식을 고안해 낸 것이다.
10. 시조 3대 가집
(1) 『청구영언(靑丘永言)』 ; 조선 영조 때의 가인(歌人) 남파(南坡) 김천택(金天澤)이 고려 말엽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여러 사람의 시조를 모아 1728년(영조4)에 엮은 고시조집.
(2) 『해동가요(海東歌謠)』 ; 필사본. 2권 1책.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떨친 가객(歌客) 김수장(金壽長)이 편찬한 조선 3대 가집의 하나. 1763년에 완성.
(3) 『가곡원류(歌曲源流)』 ; 1876년(고종13) 박효관(朴孝寬)ㆍ안민영(安玟英)에 의하여 편찬.
11. 작가층
조선 전기에는 사대부가 주 창작층이었으나 중기에는 기녀들도 참가하였으며, 후기에 이르러서는 평민들도 활발하게 참여하였다.
12. 시조 문학의 생명이 긴 이유
(1) 노래로 불리어질 때 그 유장한 리듬(4음보격)이 우리 민족의 호흡에 자연스럽게 합치.
(2) 표현 기교가 조선 시대 사대부들의 미의식에 적합하도록 구성.
13. 시조와 같은 4음보의 노래가 사대부들의 취향과 잘 부합될 수 있었던 이유
시조는 형식이나 운율이 매우 안정적이고 단아하여 유학자나 사대부들이 그들의 사상과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서정 갈래였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3음보 중심이었던 고려 속요가 주도권을 상실하고, 4음보 중심의 시조가 새로운 주도적 시가 형식으로 자리 잡아 가는 우리 시가사의 변모과정은 시가의 주된 담당 계층이 서민층에서 사대부층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과 맞물려 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서는 발랄하기는 하지만 사물을 깊이 있게 추구하기에 부적당한 3음보의 노래보다는 균형감과 안정감이 있는 4음보의 노래가 그들의 사고방식에 더 적합했던 것이다.
14. 시조가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이유
시조 형식 자체가 지닌 내적 특성(3ㆍ4조 4음보의 3행으로 이루어져 있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에서 연유.
15. 시조가 비유적 표현과 상징적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
시조는 3장의 간결한 짜임만으로도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서정적 교양과 완결을 이루어야 했기 때문에 사대부들은 그들의 생각을 비유적ㆍ상징적으로 절제된 형태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비유와 상징이 많이 사용되었다.
16. 시조가 3장의 짜임만으로도 구조적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서정적 고양과 완결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고도의 비유와 상징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초ㆍ중장은 율격적 개방성을 띠고, 종장은 호흡을 비대칭적으로 긴장시켰다가 풀어줌으로써 작품을 완결하고 있기 때문. 그리고 3단 구성의 시상 전개 방식이 지닌 한국적 전통성 때문.
17. 시조 vs 가사
18. 현대시조의 특징
(1) 형식면 ; 음수율이 고시조에 비해 자유롭고, 구별 배행 시조 및 연시조가 많다. 순수한 고유어를 많이 사용하고 개성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며 제목이 있다.
(2) 내용면 ; 현대인의 생활과 감정,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19. 현대시조와 고시조의 차이점
20. 시조 작가와 향유계층
(1) 시조는 고전문학(시가) 가운데 가장 많은 작품이 전하고 있으며 작가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들 대부분 양반 사대부들이 많은 분포를 보인다. 따라서 시조는 사대부 양반 계층을 중심으로 창작 향유된 갈래이다. 이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자의 분포가 다양해지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2) 시조는 여말에 신흥사대부들에 의해 형성되어 조선 초기에 이르러 ‘4음보격 3행시’라는 간결한 형식으로 완성되어 사대부들은 자신들의 내면적 감흥과 풍류를 시조를 통해 드러냈다.
(3) 작자로 기녀들이 등장하면서 관습화되어 가던 시조에 생동감을 불어 놓게 되었다. 연희나 잔치의 자리에서 사대부들의 흥을 돋우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정서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 등을 시조에 담아냄으로써 시조의 주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4) 18C에 접어들면서 평민 가객들이 나타나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다. 시조창이 전문화ㆍ직업화되어 생활의 한 방편으로 삼았다. 그들은 가단(歌壇)을 형성하고, 가집(歌集)을 편찬하였으며 끊임없는 연수를 통하여 시조의 작법과 창법을 개발하여 시조의 발달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18C에 이르러서는 사설시조가 많이 창작되었는데, 이는 평민가객들의 독자적인 미의식이 사설시조의 희극미를 창출하는 데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 시기의 위항문학의 성행, 가사문학의 변화, 판소리 사설의 완성 등 일련의 문학 외적 변화와도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18C에 시조 문학의 주도권이 양반 사대부 계층에서 평민가객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향유계층은 여전히 사대부 계층이 중심이었다.
21. 시조의 내용상의 특징
시조의 주제가 전개되는 양상은 당대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시기에 따라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2. 시조 주제의 이원성(사대부 시조와 기녀 시조를 중심으로)
(1) 시조는 고려 말 조선 초 사대부들에 의해 시조의 한 성격이 성립되어 사대부 시조의 전통을 계속 이어갔다. 곧 전형적인 관념적 유교이념을 형상화하는 시조였다. 여말선초에는 고려 왕조에 대한 회고가와 절의가를 통해 자신들의 감흥을 표현하였으며 사대부 시조는 곧 조선왕조의 개국으로 이어 조선에 대한 절의를 표현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이어 맹사성의 「강호사시가」에서는 자연에서의 즐거움을 노래하여 궁극적으로는 임금에 대한 유교적 충의사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성삼문, 박팽년 등의 작품에서는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내용이 표현되고 있으며 16C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시조는 사대부 시조와 기녀 시조로 창작 계층이 분화되어 시조의 한 분류를 형성하게 된다. 즉 사대부 시조는 자연에 대한 고아한 품격과 자연에 투영된 인생관의 극치를 보여주는 시조인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 그리고 유교 덕목인 오륜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것을 백성들에게 교화하는 내용을 창작하기도 했다.
(2) 시조는 앞서 설명한 사대부 시조와는 달리 관습화되어 가던 시조에 생동감을 불어넣게 되어 연희나 잔치의 자리에서 사대부들의 흥을 돋우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정서인 사랑과 이별, 그리움들을 시주에 담아내어 시조의 주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구체적인 인간의 내면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즉 인간적인 애정의 형상화로 고려 속요에 표현되었던 발랄한 애정 표현을 기녀시조가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23. 시조의 화자와 청자
(1) 시조에서는 전달을 목적으로 하느냐, 자신의 정서적 내면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느냐는 태도에 따라 화자와 청자의 관련 양상이 달라지게 된다. 대개 조선 초ㆍ중기에는 화자와 작자가 동일인의 여부 판단이 어려웠다. 정철의 「훈민가」의 ‘나’는 일반 백성을 의미하며, 김상용의 「오륜가」의 ‘나’는 작품이 지향하고 있는 청자이다.
(2) 시조는 공감성과 일치성 때문에 구비 전승되면서 오래도록 향유되었는데 바로 화자와 작자의 공감성에 큰 힘이 있다. 작자가 작품 속에 어떤 변용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서 내용이 공공적인 관념이나 이념의 표방에 치우치게 되었고, 본능의 진술보다는 선언적 태도나 대의명분을 지향하게 되었다.
(3) 사설시조에서의 화자 : 작자의 모습이 감추어지고, 대신 작중의 화자가 따로 등장하게 된다.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남의 목소리를 빌어 말하는 수법이 본능적인 표현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시적 화자를 따로 설정하는 것은 시적 형상화의 기법에서 새로운 변화나 고양의 단계이다.
(4) 청자 : 시의 청자는 실재 청자, 화자가 지향하는 청자로 나뉜다. 시조를 창(唱)으로 부른다면, 이를 듣는 사람이 실재 청자이고, 작품 가운데 설정되어 시의 화자가 지향하는 인물도 청자가 된다. 실재 청자와 작중 청자가 일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